우판사 교수의 와인 교과서
축제의 음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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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3-03 02:14:48
작성자: NNP info@newsandpost.com
축제의 음료 다시 그리스 신화로 돌아와서, 디오니소스는 와인을 마시며 축제 문화를 퍼뜨렸는데, 당시에는 와인을 물에 타지 않고 마시는 것을 야만적인 행위로 여겼다. 이를 증명하는 이야기가 있다. 아티카 지방의 이카리아를 방문한 디오니소스는 자신에게 친절을 베푼 마을 농부 이카리오스에게 포도나무 재배법과 와인 제조법을 알려줬다. 친절한 이카리오스는 와인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과 나눠 마셨는데, 물을 섞지 않고 마신 것이 화근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취하자 이카리오스가 술에 독을 탄 것이라고 오해한 나머지 사람들이 그를 죽인 것이다. 화가 난 디오니소스는 마을에 전염병을 내리고 기근이 들게 하며, 마을 처녀들을 미치게 하는 신벌을 내렸다. 고대 디오니소스 축제의 핵심은 여성들이 술을 마시고 광란의 춤을 추는 것인데, 짐승을 갈기갈기 찢어 피가 흐르는 날고기까지 먹었다고 한다. 이런 행위를 문명화되지 못한 원시적인 행위로도 볼 수 있지만, 시간이 꽤 흐른 지금의 술과 파티 문화도 이러한 광적인 부분이 있지 않나 싶다. 디오니소스와 연관된 또 다른 이야기는 테베 왕 펜테우스의 비극이다. 디오니소스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과 함께 와인과 축제로 한창 세력을 확장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펜테우스는 디오니소스에 대한 신앙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 신에게 대항하며 축제를 탄압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디오니소스의 꾐에 빠지고 만다. 그는 키타이론 산에서 광란의 축제를 벌이는 여성들을 나무 위에서 지켜보게 되는데, 이 때 디오니소스가 여성들에게 광기를 불어넣었다. 이성을 잃은 축제 참가자들은 펜테우스를 발견하고 찢어 죽이는데, 그 선봉에 섰던 여성은 놀랍게도 펜테우스의 어머니인 아가베였다. 자신이 저지른 짓에 놀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가베에게 디오니소스는 잔인하게 말한다. “신인 나를 감히 업신여긴 대가다.” 신화의 사실 여부를 떠나 그리스 신은 참으로 인간을 닮아 인간적이다. 그들은 인간처럼 사랑하고 인간처럼 질투하며 인간처럼 분노하고 기뻐한다. 여담이지만 신화 속 그리스인들의 자유로운 상상과 술과 축제를 즐기는 여성들을 보면 이미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예견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런 폭넓은 자유사상과 타 문화를 받아들이고 융화시킨 점은 그리스 문화가 신화를 벗어나 세계로 뻗어나가게 하고, 마침내 유럽 사상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헬레니즘 문화를 탄생시킨다. 가장 오래된 포도 33년이라는 짧은 인생, 그중 13년을 왕위에 있으면서 이토록 엄청난 역사를 만든 이가 또 있을까! 멀게는 로마의 카이사르가 닮기를 원했고 근대에는 나폴레옹과 히틀러가 닮고 싶어했던 헬레니즘 최고의 영웅 알렉산더 대왕! 수많은 수식어가 붙고 지금까지도 여러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며 신화 속에 살지 않았으면서도 신화 같은 인생을 살다 간 알렉산더. 그는 동으로는 바빌론과 인도를 거쳐 아프가니스탄까지, 서로는 이집트를 정복했다. 그러나 단순히 정복한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지역에 그리스의 자유로운 사상을 전하고 이민족의 뛰어난 문화와 전통을 받아들여 세계 융합적인 사상을 완성했기에 지금까지도 그를 위대한 왕이라고 부르는 것이리라. 그리스의 대 철학가 아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모시고 윤리학, 철학, 문학, 정치학, 자연과학, 의학을 배운 알렉산더 대왕은 확고한 그리스 사상 속에서 오리엔트 문명을 받아들여 헬레니즘이라는 서양 사상의 한 축을 마련한다. 학문도 분야를 가리지 않고 배운 것처럼, 그리스 이외의 다른 세상에 대한 갈망은 전쟁이라기보다는, 세상 끝까지 가 보는 일종의 순례 행위처럼 보인다. 그는 점령한 땅 곳곳에 자기 이름을 딴 수도 알렉산드리아를 세웠는데 세계적으로 70여 곳에 이른다고 한다. 여기서 가장 오래된 포도의 기원이 나온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그들이 정복한 모든 곳에 와인을 전파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포도 품종은 머스캣 오브 알렉산드리아 (Muscat of Alexandria) 이다. 고대에는 전쟁 중에 물 대신 와인을 마셨는데, 이는 건강을 생각한 현명한 선택이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그리고 전쟁이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 물은 자주 부패했고, 상대방 우물에 독약을 푸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와인은 알코올이라는 특수 물질 덕분에 물에 비해 더욱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었다. 물론 와인도 잘못 보관하면 시큼한 향과 함께 식초가 되지만, 적어도 부패한 물을 마셨을 때 생기는 심각한 문제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스로부터 온 문화와 와인 그리스 문화는 유럽 사회 전역에 걸쳐 계승•발전됐으며 현재까지도 문화 산업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물론 와인도 예외일 수는 없다. 물론 와인도 예외일 수는 없다. 그리스는 유럽에서 와인을 최초로 접한 나라이며 와인 문화를 전파한 나라이기도 하다. 와인처럼 그리스에서 시작해 현재까지 유럽 등지에서 활용되고 있는 또 한 가지가 바로 건축 양식이다. 현재 유럽식 건축 양식을 대표하는 세가지 기둥 양식은 모두 그리스로부터 전승됐다. 그 세 가지란 도리스, 이오니아, 코린트 양식으로, 이를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주단의 모양을 살피는 것이다. 로마가 퍼트린 문화와 와인 서양 약사에서 로마 제국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로마 제국은 그리스문화를 계승하며 이스라엘, 즉 유대의 기독교 신앙을 전 유럽에 전파하고 그것을 중세를 넘어 현대까지 전승했다. 이렇게 유대 사상이 로마를 통해 빛을 발한 문화를 헤브라이즘이라고 부른다. 콘술(Consul, 집정관)이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점령한 모든 곳에 포도원을 만들고 와인을 생산했는데, 당시에 갈리아라 불리던 프랑스와 게르만이라고 부르던 독일에까지 포도나무를 옮겨 심어 포도주를 생산할 수 있었다. 갈리아에서 승전한 카이사르는 군대를 해산하고 로마로 돌아오라는 원로원의 결의 통보를 들었다. 원로원의 지지를 받던 폼페이우스와도 사이가 악화됐던 그는 결국 BC 49년 “주사위는 던져졌다.”라는 유명한 말을 하며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격했다. 이후 도망치는 폼페이우스를 쫓아 이집트로 향했으나 그곳의 왕위 계승 싸움에 휘말려 알렉산드리아 전쟁이 발발한다. 카이사르는 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클레오파트라를 왕위에 오르게 했다. BC 47년에는 젤라에서 파르나케스를 격파하고,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veni, vidi, vici)”라는 유명한 전갈을 원로원으로 보냈다. 그는 자신의 군인들에게 날마다 한 사람당 1ℓ의 와인을 보급했고 전투 시에는 그 두 배인 2ℓ를 보급했다고 한다. 로마 시대 최고의 건축물로는 콜로세움을 들 수 있는데, 이 또한 그리스의 건축 양식을 계승했다. 이곳에서 수많은 검투사들은 와인보다 진한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다음호에 계속) |
우판사 약력
필자는 영국 스코트랜드 위스키회사 Braveheart Group LTD에서 근무했고 귀국 후에는 와인 수입회사 (주)참살이 와인 대표, 와인아카데미 이사장, 전남과학대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 대한소믈리에협회 회장, 서강전문대학산학협력교수, 페이스북 모임 ‘신의 물방울’ 회장 등으로 활약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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