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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메리에 ‘한국전 기념비’ 건립
장해복 옹 사재털어, 27일 다운타운 공원서 제막식
플레쳐 양, ‘장해복 패밀리 장학재단’ 1호 장학생에 선정
플레쳐 양, ‘장해복 패밀리 장학재단’ 1호 장학생에 선정
기사입력: 2016-05-28 15:16:04
작성자: NNP info@newsandpost.com
▲장해복 옹(사진 왼쪽에 선글라스 착용한 인물)이 한국전 참전용사들과 함께 몽고메리시 공원에 세워진 한국전쟁기념비 앞에서 촬영하고 있다. |
현대자동차로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은 앨라배마주의 주도 몽고메리시가 또 하나의 깊은 관계의 흔적을 갖게 됐다. 몽고메리시는 메모리얼 데이 연휴를 바로 앞둔 지난 27일(금) 낮 11시경 다운타운의 로사 파크 인권박물관 앞 공원에서 ‘한국전쟁 기념비’ 제막식을 가졌다. 제막식에는 토드 스트레인지 몽고메리 시장, 한국전 참전 전투조종사로 유명한 클리브랜드 예비역 장군 등이 참석해 축사했다. 기념비에는 “Korean War”라는 제목과 함께 “영원히 기억하리”라는 한글이 선명히 새겨져 있고, 태극기와 성조기, 그리고 전투중인 미국군의 그림이 부조되어 있다. 또한 “우리 국가는 알지도 못하는 나라와 한번도 만난 적 없는 국민들을 지키라는 부름에 응답한 사람들을 존경한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한국전쟁 기간 동안 참전 미군 3만3000 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 중 앨라배마주 출신은 약 600여명, 몽고메리 출신만도 31명이다. 이번에 세워진 기념비는 몽고메리에서 ‘스마트 뷰티 서플라이’를 운영하고 있는 장해복 사장(87)이 사비를 들여 디자인하고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태어난 장씨는 일제시대 때 부모를 잃고 8살의 나이에 고아가 된 채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1976년 혈혈단신으로 500달러를 쥐고 미국에 왔다. 당시 그의 나이 48세였다. 그는 매릴랜드와 플로리다를 거쳐 20년 전 몽고메리에 정착해 뷰티서플라이를 하고 있다. 당초 장씨가 한국전쟁 기념비를 기증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처음 알려진 것은 지난 2014년 4월 몽고메리시가 "한국의 달" 선포식을 가졌을 때였다. 당시 토드 스트레인지 몽고메리 시장이 이같은 사실을 밝혀 지역사회에 화제가 됐었다. 하지만 2014년 5월26일 메모리얼 데이를 기해 완공 기념식을 가지려 했던 원래 계획이 돌을 구하지 못해 11월11일 재향군인의 날로 연기됐었다. 그러다 또 관계자들의 일정이 맞지 않아 조절하면서 다음해 메모리얼 데이로, 또 재향군인의 날로 계속 지연되면서 안타까움을 샀었다. 결국 지난 2016년 5월27일(금) 메모리얼 데이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 첫 발표를 한 지 2년만에 제막식을 거행하게 된 것. 한편, 장 사장은 25만 달러를 기탁해 평소 그가 꿈꿔왔던 고아들이 자신의 꿈을 이루도록 돕는 장학재단(장해복 패밀리 장학재단)을 설립했는데, 이날 제막식에서는 그 첫 장학생으로 선정된 발라니카 플레쳐에게 장학금 1000달러가 전달됐다. 고아시설에서 자란 플레쳐 양은 현재 트로이 대학에서 심리학과 사회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이번 장학금은 그녀의 학비에 보태지게 된다. 플레쳐 양은 “제 이야기를 말하게 해주고, 또 그분의 이야기를 듣게 해주셔서 너무나 영광스럽고 기쁘다”며 “장 사장님은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됐는데, 나 역시 그렇다. 그는 그거을 극복했고, 나 역시 그러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장 사장은 자신의 자녀들과 손주들이 졸업한 어번대학교 교정에 두번째 한국전쟁 기념비를 기부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
▲장해복 패밀리 장학재단 제1호 장학생으로 선정된 플레쳐 양이 소감을 말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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