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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일본은 어떤 일을 했는가 ...
군위안부 문제
기사입력: 2013-07-17 08:34:55
작성자: NNP info@newsandpost.com
1970년 일본 오키나와에서 배봉기의 증언, 1991년 우리나라에서 김학순의 증언을 시작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은 이어졌다. 운동의 출발점 : 군위안부 문제가 청산해야 할 민족수난기의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 것은 1980년대 후반에 와서다. 당시 이화여자대학교 영문학과의 윤정옥 교수는 군위안부 문제를 사회적 여론으로 이끌어내는데 선구적 역할을 하였다. 윤정옥 교수는 1970년 경부터 군위안부 자료를 수집하였고, 1980년에는 군위안부로 일본에 끌려갔다가 귀국하지 못한 배봉기 할머니를 방문하였는데 이것이 군위안부 운동의 출발점인 셈이다. 당시 오끼나와에 거주하고 있던 배봉기 할머니가 한국여성이며, 군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문제가 국내에서 제기되었다. 한편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많은 일본인들이 한국을 ‘기생관광’지로 여기고 찾기 시작하였다. 이는 한국 정부의 홍보에도 힘입은 바 있는 부끄러운 일이다. 이에 교회여성연합회와 이화여대 일부 학생들이 국제공항에 나가 “기생관광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하였다. 이 때 과거 역사 속의 ‘정신대’ 문제가 공론되었고, 그에 관한 학술 심포지엄도 교회여성연합 주최로 개최되었다. 그 때 윤정옥 교수가 그동안의 조사를 발표하고 점차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켜 나갔다. 그 후 윤정옥 교수는 일본, 태국, 파푸아뉴기니아를 답사하고 1988년 군위안부의 발자취를 찾기 위해 일본을 횡단하였다. 이러한 그의 부단한 노력은 1990년 1월 윤정옥 교수의 일본답사기가 [한겨레신문]에 연재되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어 그해 5월 노태우 대통령의 방일에 즈음하여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 대학원생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성명서가 발표되었다. 여기에는 한국여성단체연합회,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여대생대표자협의회가 참여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군위안부 문제를 일제시기 민족의 수난사로 받아들이는데 그치지 않고 여성에 대한 폭력의 일환으로서 여성운동의 큰 줄기의 하나로 군위안부 문제가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군위안부 문제는 해방 후 약 50년이 지나서야 규명해야할 우리역사의 중요한 이슈로 떠오른 것이다. 국제사회의 반응 1992년부터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위안부문제에 관한 토의가 시작되었고 1993년 6월의 빈(Vienna) 유엔 세계인권회의에서 전시하 성노예 문제에 관하여 과거도 포함하여 모든 문제에 유엔이 대응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국제법적으로는 ‘인도에 반한 죄’이며, ‘전쟁범죄’다. 출처 : 한국정신대연구소 |
▲처형된 위안부 매장전(1944년 중-미얀마 국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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